여행 이야기

북유럽 여행기 (8)

인강 장은식 2014. 8. 21. 08:59

북유럽 여행기 (8)

 

◆ 스웨덴과(Sweden)과 칼스타드(Karlstad)  

▲ 휄싱보리에서 스톡홀름 까지의 여행 코스 

 

스웨덴의 '헬싱보리’항에서 내린 우리는 그곳을 둘러 볼 틈도 없이 바로 버스에 올라 이날의 숙소가 있는 '칼스타드’로 떠나야 했다. 그렇듯이 칼스타드는 광광을 위한 목적지가  아니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으로 가는 길에 숙소로 들리게 되는 도시가 된다. 하지만 이 코스가 스웨덴에서 가장 큰 베네른(vanern)'호수를 끼고 가는 길이어서 경관이 뛰어나 작년부터 이코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 베네른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여기서 잠시 스웨덴을 살펴보면,

스웨덴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동쪽에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AD 10세기에 통일 왕국이 성립된후 1849년에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으며 의원내각제로 총리가 국정을 총괄한다.국토의 면적은 45만 평방키로미터로 한반도의 2배가 되며 인구는 970여만 명인데 대부분이 게르만족(95%)으로 구성 되어있다. 그리고 정치적 안정으로 산업국가로 등장하였으며, 특히 풍부한 수력과 임산자원, 철광석 등을 이용한 기계·에너지·통신·전기전자 부문의 산업이 발전하였다.

 

스웨덴은 북구의 낙원이라 불리는 세계최고수준의 복지국가로서, 전국민에 대한 의료혜택·실업수당·무료교육·노후연금 등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 칼스타드의 아파트들이 단정하고 아담하게 보인다

 

한편 ‘칼스타드’는 ‘베네른호’ 북쪽 ‘클라르강’하구에 있는데, 목재의 집산 가공이 활발하고 광천 도시로서 휴양객이 많은 곳이며, 자동차로 스톡홀름까지 4시간 오슬로까지는 3시간이 걸리는 요충지이기도 하다.  

 

▲ 일반 주택들도 너무나 단아하고 깨끗하다

 

우리가 숙소로 정한 호텔로 들어가는 어구에는 예쁘고 아담한 주택들이 즐비 해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그들의 생활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 스톡홀름(Stokholm)시 청사

‘웨스턴 와스나스’호텔에서 아침을 마친 우리는 가벼운 몸으로 스웨덴의 수도 ‘오슬로’로 가기 위해 전용버스에 올랐다. 이날도 장장 4시간을 달려야 오슬로에 도착하겠지만, 우리를 설레게 하는 북유럽 특유의 풍광 덕분에 지루한줄 모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수가에 교회같은 건물은 스톡홀름시 청사

 

일행이 ‘스톡홀름’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로 들린 곳은 스록홀름시 청사였다.언뜻 보면 외관이 호수에 떠있는 교회처럼 보이지만 1923년에 건축된 시청 건물이다. 특히 이 시청사는 매년 12월 노벨상 시상식이 있은 후 축하 연회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며, 연회가 열리는 황금의 방(Gyllene Salen)은 무려 18만6000여 개의 금박 모자이크로 장식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블루 홀(Blue Hall)까지는 무료 관람이 가능하지만 그 이후로는 유료 가이드 투어에 참여해야 한다. 이 가이드 투어의 백미는 역시 노벨상 시상식 연회가 열리는 황금의 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스톡홀름시청사 정원에서 바라 본 호수 건너편 경관이다 

 

개별적으로 시청 내부를 구경한 우리는 시청 옆에 있는 넓은 정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각종 조형물과 조각품들을 관람하고 마주 보이는 호수 건너편의 경관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 바사박물관(Vasa Museum) 

▲ 바사박물관 전경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바사왕가’의 ‘구스타브 2세(Gustav II)’가 제위 하였던 1625년에 건조되어 1628년 8월 10일 처녀항해 때 침몰한 전함 ‘바사호’가 전시된 곳으로 스톡홀름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북유럽의 강국이었던 스웨덴은 더 많은 영토를 확장하고 외국에 널리 스웨덴의 국력을 과시 하기 위하여 ‘바사호’를 건조했으며, 바사호 건조에는 그시대 최고의 조선술을 보유 하고 있던 네델란드의 조선 기술자들을 참여 시키기도 하였다.

 

▲ 인양된 바사호전함이 전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때 스웨덴의‘구스타포’왕은 전함에 대포를 많이 설치하기 위하여 기술자들이 설계한 대포의 1열 배치를 복층 2열로 배치 할 수 있도록 설계 변경을 요구 하고 이를 관철시킴으로서 이 전함은 상부의 하중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건조된 전함은 그 후 스톡홀름 항에서 폴란드로 첫 항해에 나서게 되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맞은 돌풍에 선체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침몰하게 된다. 결국 구스타포왕’의 무모한 욕심이 화를 자초한 셈이다‘

 

▲ 바사호 관련 설명 자료들이다

 

자료에 의하면 침몰한 바사호는 길이 69m, 높이 48.8m, 탑승 인원 450명, 탑재 가능 대포 수량 64개에 이르는 거대한 전함으로 제작되었으며, 동시에 300kg 이상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사호는 침몰된 이후 1956년에 해양 고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침몰된지 333년만인 1961년에 인양되어 현재의 바사박물관에 전시 되고 있다. 박물관은 총 4층으로  바사호 관련 자료와 수장품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사호의 준공, 취항, 침몰, 인양의 각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