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기 (14)
북유럽 여행기 (14)
◆ '성페테스부르그'의 ‘피의 사원’ 답사
‘네바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관광을 마친 일행은 다음 코스로 ‘성페테스부르그’의 상징적인 교회라 할수 있는 ‘피의사원’으로 이동했다. 이 사원이 ‘피의사원’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사원이 있는 곳이 ‘알렉산드르 2세’가 피를 흘리면서 죽은 곳이기 때문이다.
▲ 일명 크리스도 부활 성당 이라고도 하는 '피의사원' 전경이다
‘알렉산드르 2세’는 1881년 이곳에서 ‘인민의 의지(意志)파’에 속하는 ‘그리네비츠키’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훗날 황제가 된 ‘알렉산드르 3세’가 ‘알렉산드르 2세’를 기리기 위하여 이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가 본 ‘피의사원’은 러시아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으며, 유명한 화가들이 도안한 모자이크 그림이 많은 것이 눈에 돋보였다.
◆ ‘니콜라이(Nikolai)’ 궁전에서 러시아 민속공연 관람
오랜만에 구수한 된장찌개가 나오는 한식으로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는 7시에 시작하는 ‘러시아 민속 쇼’를 보기 위해 ‘니콜라이’ 궁전으로 갔다.
‘니콜라이’궁전은 1861년에 지은 궁전인데 이 궁전의 2층을 개조하여 민속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공연장 주변의 작은 방들에서는 궁중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운영하고 있었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민속공연은 러시아 고유의 의상을 입은 남녀 댄서들이 나와 경쾌한 댄스와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춤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관객들의 흥미를 돋우어 주는 데는 손색이 없는 것 같았다.
관객들은 1부 공연이 끝나자 로비에 나가 음료와 와인 등을 마시며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곧 이어지는 2부에 들어갔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미모의 여성 댄서들이 마음에 드는 남자 관객을 무대로 불러들여 같이 춤을 추게 해 그 순간은 무대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환호와 함께 열띤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하였다.
◀ 니콜라이 궁전의 전경이다
▲ 러시아 민속 쇼 단원들의 인사 하는 모습이다
이 민속공연 관람은 옵션 행사로 70유로의 비싼 관람료가 들었는데 그럼에도 일행들의 반응은 괜찮았다는 평이 주류를 이루었다.
◆ 모스크바(Moscow)로 향하다
‘리라‘호텔의 모닝콜이 새벽 4시에 울린 것은 이날 '성페테스부르그'의 ’풀코보(Pulkovo)공항에서 6시 20분에 출발하는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짐을 챙기고 버스에 올라 새벽 공기를 가르며 ’풀코보‘공항으로 달려야 했다. 이렇게 나이 든 우리들이 민첩한 행동으로 협조한 결과 일행은 예정보다 일찍 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마치고도 시간이 남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6시 반이 지나서야 이륙을 했는데 동쪽 하늘에는 그때서야 구름 속으로 아침 햇살이 붉게 비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반사적으로 창문을 이용해 몇장의 사진을 찍은 다음, 그 광활한 러시아 땅을 내려다 보며 나만의 상념에 잠기고 있었다.
▲ '성페테스부르그' 상공에서 동이트는 아침을 맞이하였다
‘성페테스부르그’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1,200만 명의 인구를 거느린 대도시로 유럽 러시아의 중부인 ’오카강‘ 지류의 ’모스크바 강‘ 유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모스크바’는 ‘볼가강’과 ‘오카강’ 사이에 있어 수운(水運)의 중계지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개 한촌(寒村)에서 모스크바공국(公國)의 수도가 되었고, 다시 러시아제국의 수도가 되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18세기에 ‘성페테스부르그’로 수도가 옮겨진 뒤에도 ‘모스크바’는 여전히 러시아의 수공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계속 발전하였고, 역대 황제는 모스크바에서 대관식을 올리는 관례를 지켜 ‘성페테스부르그’와 함께 러시아의 2대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여 왔다.
▲ '풀코보'공항 인근의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러시아혁명 뒤 다시 수도가 된 모스크바는 ‘소비에트’시대에 정치·문화·경제·교통의 중심지로서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였고 1991년 이후에는 개방된 러시아연방의 수도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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