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4국 여행기 (5)
발칸 4국 여행기 (5) (2016. 10. 14 ㅡ 10. 21) ▲ 차창가에서 본 '보스니아' 국경 근처의 포도밭과 주택들이다. '스플리트'를 출발한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중서부 해안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보스니아' 국경을 향해 한참을 달려 휴계소를 지난 다음 도로변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얼마 가지 않아 국경을 넘게 되었다. '보스아니아'란 나라는 '크로아티아'와 같이 유고연방에 속해 있다가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국토 5만여 km2에 400만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 1992년에 독립을 하게되었지만, 보스니아계 (이스람교 48%)와 세르비아계 (세르비아정교 37%) 그리고 크로아티아계(카톨릭 15%)등 3개 세력간의 민족적 종교적 갈등이 폭발하여 오랜 내전을 치루게 되면서 이 나라는 황폐화 되었다 . 내전은 1995년에 겨우 수습되어 연방(무를림+크로아티아계)체제를 갖추어 평화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지금도 민족및 종교간의 갈등과 대립이 자주 일어나 폭발의 소지를 계속 안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나라의 정식 명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이며 수도는 우리가 잘아는 '사라예보'다. 국가 명칭이 이렇게 긴것은 국토의 남쪽에 위치한 자그만 '헤르체고비나'를 연방에 포함시켰기 대문인데, 이 '헤르체고비나'의 옛 수도가 바로 '모스타르'로 지금 우리가 방문하러 가고있는 그 곳이다. ▲ '모스타르'의 유명한 다리 'Old Bridge'가 보이고 아래는 '네레트바강'이 흐른다. 왼쪽이 캐톨릭 지역이고 오른쪽이 무슬림지역이다. '모스타르'라는 이름은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재 이곳에는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라는 오래된 다리가 있으며, 이 다리는 1566년 '오스만 투르크' 점령 때 9년에 걸쳐 건설이 되었다고 한다. 폭 5m, 길이 30m, 높이 24m인 이 다리는 북동쪽과 남서쪽에 탑이 2개 있으며 아치형 다리로 돌로 만들어져 있다. ▲ 이 'Old Bridge'는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공동체의 공존과 화해의 상징이다. 다리 아래로는 '네레트바' 강(江)이 흐르며, 다리를 사이에 두고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가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993년 '보스니아' 내전이 발발하여 이 역사적인 다리와 옛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유네스코'에 의해 설립된 국제과학위원회의 기부로 옛 다리와 시가지에 있던 건물들이 재건 또는 복원이 되었으며, 200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 오른쪽이 무슬림 지역이다. 이슬람사원의 돔과 첨탑이 보인다. ▲ 아름다운 집들이 있는 왼쪽이 성당이 있는 지역이다. 이 옛 다리 지역은 오스만 제국 이전의 건축과 동 오스만제국의 건축, 그리고 지중해 및 서부 유럽의 건축 양식 등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의 훌륭한 사례이며, '모스타르' 옛 시가지의 다리(Old Bridge Area of the Old City of Mostar)는 국제적인 협력과 다양한 문화적·민족적·종교적 공동체의 공존과 화해의 상징으로 그 보존 가치가 크기 때문에 '유네스코'의 관심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 성당이 있는 서쪽지역의 골목 상가 모습이다. 우리가 '모스타르'에 도착하여 주차장에 버스를 세운 지역은 옛 다리가 있는 '네레트바'강 서쪽이며, 성당이 있는 지역이어서 유럽적인 정서가 느껴졌으나, 걸어서 동쪽으로 7분정도 걸려 만나게 되는 옛 다리 넘어로는 완연한 이슬람 국가의 정서를 느끼게 하였다. ▲ 무슬림지역의 상가 모습이다. 특히 이 다리까지 걸어 가면서 파손된 건물과 건물벽에 벌집같이 구멍이 뚤려있는 총탄의 흔적들을 보면서는 내전 당시의 치열했던 전장의 참혹상을 여럽지 않게 연상해 볼 수가 있었다. 나는 옛다리 위에서 몇장의 사진을 찍은후 이슬람 지역으로 넘어가 보았다. 처음에는 좀 섬뜩한 기분도 들었지만, 강가에 형성된 상가 골목길에 들어서면서 '무슬림'들의 표정이 밝게 보여 말을 건네 봤더니 너무나 상냥하고 친절하게 상대를 해주어 그때 부터는 안심하고 윗쪽으로 깊숙히 올라가며 이들 지역의 생활상과 강가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을 수가 있었다. ▲ 성당이 있는 서쪽지역의 건물에서 참혹했던 내전의 상흔들이 역역하게 보인다. 상점이 있는 골목을 지나 높은 이슬람 사원탑이 있는 곳 까지 올라가 사원을 둘러보고 내려 오는 길에는 이외로 나이든 '무슬림'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눠 볼 기회가 생겨 잠시 친구 같은 기분으로 사진을 찍어주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러한 무슬림과의 대화는 그동안 나도 모르게 서먹서먹하게 생각했던 '무슬림'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한 순간에 불식 시켜주는 좋은 계기가 되어 옛 다리를 넘어간 일이 매우 유익하고 보람이 있었음을 자찬하며 다시 서쪽지역으로 넘어와야 했다. ▲ 무슬림지역에서 사는 두 할머니가 기꺼히 친구와 같은 대화를 해주고 포즈도 취해 주었다. 옛다리를 넘어 온 나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싶어 버스가 있는 광장쪽으로 천천히 걸어 가면서 이 서쪽 지역에서도 수녀복을 입은 할머니와 잠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그런데 이 할머니 역시 상냥하게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갑게 대해주었다. 이렇듯 내가 만나 본 이곳 사람들은 그게 캐톨릭이건 무슬림이건 관계없이 모두 우리와 같이 선하고 착한 사람들 이었는데 도대체 누가 이들을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서로가 적대시 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하고 생각을 해 보니 그것은 민족적인 갈등문제도 내재되어 있었겠지만, 너무나 뻔한것은 그들이 믿고있는 종교가 주된 원인 일수 밖에 없는것 같았다. ▲ 서쪽마을의 대표적인 성당인 '프란시스코. 성당의 높은 종탑이 보인다. 나는 이러한 사실 앞에 분노한 나머지 이들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 부터가 밉다 못해 저주스럽기 까지 했으며,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들 종교를 맹신하고 따르는 사람들 역시 어리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 앞에서 걷고있는 분들이 우리 일행들이다. 나는 이렇게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영역까지 생각을 하고 또 이를 추수려가며 성당이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일행들은 거의 버스에 올라 있었다. 나는 이들을 보는 순간 재회의 기쁨 같은것을 느끼며, 버스가 이 마을을 빠져 나갈 때에는 내가 본 이 아름다운 고장의 평화가 영원 하기만을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다. (계속) |